[서울특별시검도회] 몸으로 칼을 갈아 마음으로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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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특별시검도회 작성일07-09-13 조회10,013회본문
《젊었을 때에는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칼이 없으면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누구든 맞서는 사람은 한 칼에 벨 수 있도록 갈고 또 갈았습니다. 내 칼보다 더 예리한 칼이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별별 수단과 방법을 다 써봤습니다. 그러나 그 칼은 조금이라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상대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기 일쑤였습니다.…이제는 더 이상 칼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을 꿈꿉니다. 그러나 가끔은 녹이 슬까 두려워서 꺼내어 닦습니다. 하지만 닦기만 할 뿐 갈지는 않습니다. 그저 칼집에 넣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방패막이라고 여기며 만지작거릴 뿐입니다. (김경집 ‘나이듦의 즐거움’에서)》
강호는 불온하다. 누가 언제 뒤통수를 후려칠지 모른다. 월급쟁이들은 저마다 간과 쓸개를 집에 떼어놓고 다닌다. 그리고 남몰래 묵묵히 “쓱싹 쓱싹” 칼을 간다. ‘언젠가 두고 보자’며 칼날을 벼린다. 동학 창시자 최제우 선생(1824~1864)은 왜 칼춤을 췄을까? 깨달음의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번뇌의 싹을 베기 위한 몸부림인가? 과연 칼 속에 길은 있기나 하는 것인가? 칼은 하늘이고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은 하늘(人乃天)인가?
원시인들은 베지도 못할 돌칼을 왜 죽도록 갈고 또 갈아 만들었을까? 청동기시대사람들은 그 무른 청동검으로 제대로 싸우기나 했을까? 삼국지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설치고 다닐 때, 고구려 무사들은 무슨 칼을 들고 만주벌판을 휘저었을까?
쇠칼은 검(劍)에서 도(刀)로 발전했다. 검(劍)은 ‘양날 칼’이고, 도(刀)는 ‘외날 칼’이다. 검은 가볍고 도는 무겁다. 그래서 도는 양손으로 슴베(칼자루)를 잡는다. 서양의 펜싱은 한손 ‘검’이지만 동양의 검도(劍道)는 양손 ‘도’이다. 펜싱은 스피드가 빠르지만 가볍고, 검도는 속도는 그 보다 못할지 모르지만 예리하고 둔중하다. 펜싱이 찌르기에 능하다면, 검도는 치고 찌르고 베는 데 고루 능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든 칼은 왼쪽에 찬다. ‘광화문 그 남자’ 이순신장군 동상은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다. 오른쪽 허리에 찬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 [화보]검도장으로 간 그녀들, 무엇을 찾는가
검도는 ‘칼의 길’이다. 칼과 몸과 기운이 하나가 돼야 비로소 그 길이 보인다. 서양에는 기사도 정신이 있다. 동양에는 무도정신이 있다.
○기합 넣을 때면 스트레스 ‘말끔’ 자신감 ‘쑥쑥’
검도관을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여대생은 물론 직장여성들도 많다.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검도에서 ‘칼은 몸으로 닦고, 마음으로 베는 것’이다. 우선 칼을 내지를 때마다 끊임없이 기합을 넣어야 한다. 기합은 아랫배 단전에서 나온다. 단전의 기가 모아져야 비로소 발이 움직인다.
10개월 경력에 4급 실력인 김항중씨(32·푸르덴셜 생명)는 “회사 동료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기합을 넣을 때마다 온갖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 너무 좋다”고 말한다. 4년 경력에 1급 실력인 황선영씨(23·취업준비생)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덤으로 살까지 빠졌다”며 웃는다.
검도는 몸의 왼쪽부분이 중심이다. 오른손과 오른발은 어디까지나 보조기관이다. 왼발 앞쪽에 힘을 주면서 그 힘으로 중심을 이동한다. 왼손은 늘 칼의 중앙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급 실력의 구태란씨(32·디자이너)는 “단순동작의 반복에 미묘한 맛이 있다. 칼을 잡은 지 1년여 만에 컴퓨터 VDT증후군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주로 몸의 왼쪽을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신체 밸런스가 저절로 잡혔다”고 말했다. 초단실력의 이보현씨(24·연구원)는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인내심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장에 나온 지 한달됐다는 황정연씨(25·회사원)는 “처음엔 지루한 면도 있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모델에이전시회사에 다니는 안혜임씨(24)는 “착해지고 예뻐지는 것 같고 마음이 편안해져 너무 좋다. 삶의 활력소가 솟아나고 당당해진다”며 활짝 웃었다.
검도는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의 운동. 정신이 흐트러지면 칼도 흔들린다. 몸의 균형이 와르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만큼 정신자세가 중요하다. 2단 실력의 사법고시준비생 백은지씨(이화여대 3)는 “무엇보다도 체력과 집중력이 좋아져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동급생 1단 실력 곽명지씨도 “오직 나 자신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정신이 맑아진다”며 “검도하는 것처럼 공부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도 입문 1년 만에 VDT 증후군 사라져”
검도는 예(禮)서 시작해서 예(禮)로 끝난다. 예가 빠지면 그것은 곧 싸움이다. ‘활인검(活人劍)’ 즉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 된다. 검도에선 ‘맑고 담담한 눈’이 으뜸이다. 무념무상. 눈이 흔들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 ‘칼의 길’을 놓친다. 여성검도인 박소용(35·5단) 이화검도관(02-536-6402)관장은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검도다. 때론 자만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결국 하다보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되고, 몸을 낮추게 되는 것이 검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진짜 고수는 칼을 뽑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다. 무도(武道)의 ‘무(武)’는 싸움을 뜻하는 ‘창(戈)’과 ‘그침(止)’의 합성어다. 바를 ‘정(正)’자도 어느 ‘선(一)’에 가면 ‘멈출(止)’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예요 검도인 것이다. 요즘 강호는 흑도들이 판을 친다. 툭하면 칼을 뽑고 설쳐댄다. ‘급’이 안 되는 자들이 칼춤을 추고, 칼의 노래를 불러댄다. 요즘 강호는 불온하다.
검도를 배우려면 우선 가까운 도장을 찾아야 한다. 대한검도회 홈페이지(http://www.kumdo.org/)에 실려 있는 협회공인 전국 도장 중에서 가까운 곳을 찾으면 된다. 2006년 말 전국에 793곳(서울 191, 경기 146)의 도장이 있으며 검도 인구는 유단자 12만 명을 포함해 약 6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달 수강료는 9만~10만 원선. 여기에 입관비(3만원)+도복(저고리와 바지 총 4만원)+죽도(2만원)비용이 추가로 든다. 2~3개월 정도 수련을 하면 몸을 보호하는 호구도 구입해야 된다. 호구는 호면(목 윗부분)+갑(허리와 몸통 부분)+갑상(허리 아래에서 허벅지부분)+호완(손에서 팔목 윗부분)으로 구성되는 데 보통 30만~50만원정도면 구입 할 수 있다.
검도의 급수는 5급부터 1급까지 있으며 그 위로는 초단부터 시작되는 유단자다. 보통 1년 정도면 초단을 딸 수 있다. 유단자부터는 위로 올라갈수록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연예인중에도 검도인들이 많다. 대한 검도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탤런트 최민수씨가 4단,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 나온 박성민씨가 5단이며 영화 ‘내사랑 싸가지에 출연한 김재원씨도 검도 마니아다.
◆ [화보]검도장으로 간 그녀들, 무엇을 찾는가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