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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검도회] 氣를 모아 머리! 나는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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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특별시검도회 작성일04-06-10 조회3,1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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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를 모아 머리! 나는 칼이 된다

[조선일보 최보윤 기자]

영화 ‘킬빌’에서 멋지게 칼을 휘두르는 여배우 우마 서먼을 동경했다. 그녀를 닮고 싶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검도를 하고 난 뒤 6개월 만에 8㎏을 뺐다는 친구의 말에 혹해서였다. 어찌 됐던 간에 ‘검’은 매력적이었다. 검도 4단 이상의 사범만 10여명을 배출했다는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세검관을 찾았다.


◆“살을 빼러 왔다면 그냥 돌아가세요.”

흰색 상의를 먼저 입은 뒤 치마처럼 통이 넓은 남색 바지를 덧입었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도복을 갖춰입는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허석 사범(4단)이 대뜸 물었다. “도장에 왜 오셨습니까?” 이유를 머릿속에서 떠올려봤지만, 이미 그의 눈빛에 제압당한 뒤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요즘 정신력 키우기가 유행이잖아요. 또 친구가 검도 하고 나서 살이 엄청 빠졌다고. 얼굴살부터….”라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살을 빼려거든 헬스클럽에 가세요. 죽도 한 번 잡으려면 최소 3개월, 한 단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이죠.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정신력으로 뭘 하려드십니까.” 허 사범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된통 혼난 것보다 더 마음이 아렸다. 살빼는 건 덤이었다. 도장을 찾는 사람들 중 90% 이상이 “굳이 살을 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빠진다”고 말했다.

◆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오른발을 앞으로 조금 내민 자세에서 왼쪽 발꿈치를 살짝 들고 걷는 ‘밀어걷기’ 연습을 반복했다. 다음엔 죽도를 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동작을 계속했다. 드디어 호구를 쓰는 순간. 허리에 묶는 갑상을 두르고 가슴 쪽엔 갑옷처럼 생긴 갑을 입었다. 이제 얼굴을 보호하는 호면을 쓸 차례. 마치 철가면을 쓰는 듯 머리 전체가 꽉 조여왔다.

복장을 갖추고 도장에 있는 거울에 모습을 비춰봤다. 그때였다. 영화 ‘마스크’와 ‘반칙왕’이 동시에 떠올랐다. ‘초록색 마스크’나 ‘타이거 마스크’ 모두 얼굴에 밀착됨과 동시에 주인공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이런 만족감 때문일까. 최근엔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웰빙(well-being)’ 열풍 덕에 검도 인구도 늘었다. 세검관만 해도 작년에 비해 50명이 늘어 120명의 관원이 등록돼 있다. 전체 검도 인구는 60만~70만명. 작년에 비해 10만명 정도 늘었다고 한다. 여성인구도 함께 증가해 전체의 20~30%에 달한다.

◆“아니, 사범님을 어떻게 때려요?”

양팔을 머리끝까지 올리는 ‘상단’에서 칼끝을 명치 끝 정도 위치에 두는 ‘중단’ 동작이 익숙해질 무렵, 허 사범은 ‘머리치기’를 가르쳤다. “하나 하면 반보 앞으로, 둘 하면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성큼 다가오세요. 동시에 ‘머리’ 하고 내리치면 됩니다. 이제 상대의 목을 벴는지 확인할 차례죠? ‘셋’ 하면 왼발을 뒤로 빼 물러납니다.” ‘머리’ 하고 외치는 순간, 팔에 힘이 쭉 빠졌다. “차라리 제가 맞을래요. 못하겠어요.”


“최보윤씨. 검도는 사범들이 맞아주면서 가르치는 운동입니다. 사범이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가르치기 때문에 저절로 존경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죠. 뭐, 원한다면 일단 맞아보시죠.” 허 사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뻑’ 소리가 났다. 순간,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아플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굉장히 시원했다. ‘그래, 상대의 칼에 먼저 쓰러지기 전에 공격하자’는 생각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 세상아 덤벼라!



호면 밖으로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대1 대련 상대가 바뀌었다. 허미경 사범(4단)이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안 받아요? 왜 이리 박력이 부족해요?” 단전에 힘을 주고 기합도 세게 내질렀다. 검도에 한번 빠지면 왜 중독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결별을 선언한 애인을 떠올려도 좋고, 영화 ‘반칙왕’ 주인공처럼 ‘손 봐줬으면’ 하는 상대를 염두에 둬도 좋다. ‘머리!’, ‘손목, 머리!’ 하고 내리친 뒤 상대의 곁을 스쳐갈 때 그 쾌감이란…. 기합소리를 리듬 삼아 검을 휘둘렀다.

세검관 이한식 관장(7단)은 “어지간한 남자들도 허미경 사범을 못 당한다”며 “검도는 그만큼 평등한 운동”이라고 했다. 사범들에게 큰절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쳤다.

검을 잡고 보니 무서운 게 없어졌다. 우울했던 순간, 복잡했던 마음 모두 싹 정리되는 것 같았다. 검을 놓은 지 이제 하루 지났는데, 손가락은 이미 검의 향수에 젖어버렸다.

(최보윤기자 spic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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