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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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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지는 검도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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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eoulkumdo 작성일04-07-12 조회2,2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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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지는 검도 Ⅳ

1. 기도하는 마음이 능력을 넓혀 준다.

옛날부터 검도장을 비롯한 武道場에는 神을 모시는 곳이 있었다. 武道도 최근에는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에서 오는 연수생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때이므로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고 있어도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무신(武神)에게 비는 것은 허용된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게 해 주십시요. 승단 심사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요.라고 하는 구체적인 기도도 있을 것이고, 그 중에는 단지 손을 합장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침착해진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요가를 하고 있는데 연습전에 반드시 합장을 한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자세를 보이는 것은 기도하는 때가 아닐까. 기도의 내용이 어떻더라도 일심불란(一心佛亂)으로 양손을 마주하고 기도하는 모습 - 그것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宮本武藏은 神佛은 존경하지만 그것이 자기 소원을 부탁하는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劍의 수행에 힘쓰는 것이 큰일이지, 연습도 하지 않고 실력도 없이 이기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훈련을 빠뜨리지 않고, 그리고 실력도 충분히 있어 이길 자신이 있을 때에 무운장구의 신에게 합장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것은 검도뿐만이 아니라 두뇌개발과 능력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라는 것은 神이라는 대상에게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적으로 신에게 부탁입니다. 이기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무사시가 말하는 부탁에 해당한다. 물론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조용히 합장하고 마음을 침착하게 하여 이긴다고 기도하는 것 - 이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內在力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교육도 어른의 능력개발과 똑같다. 교사나 지도자가 밖에서 능력을 부여해 준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우리들은 본래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갖고있다. 본래 감추어진 잠재능력을 어떻게 해서 끌어내어 가는 것인가가 지도하는 쪽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억력 하나만 보더라도, 기억되는 대상은 외부에서 부여해지는 것일지 모르나, 기억력이라고 하는 능력 자체는 태어나면서 우리들에게 부여되어지고 있다.

불이 난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초능력도 외부로부터 그 힘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때에 안으로부터 발휘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우리들에게 갖추어진 큰 힘인 것이다. 그 힘은 생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깨닫게 된다.

옛날의 검호는 몇 번이나 생사의 경기를 넘어가는 중에 잠재하고 있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 무사시는 끊임없는 단련과 수많은 진검승부(鎭劍勝負)를 통하여 상대방의 칼이 1.5cm까지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적의 검을 그 정도까지 보고서 되돌려 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도 매일 훈련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마음을 쓰면, 달인의 경지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 질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떤 건강법의 창시자는 일생동안, 한 번이라도 장시간의 합장을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로 합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육체적으로 플러스의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해보면 잘 알겠지만, 아무리 마음이 어지러운 상태라도 조용하게 합장하고 있으면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이 조절되어진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합장하는 型을 취하는 것 만으로도 몸과 마음 양쪽이 균형있는 건강한 상태로 된다. 기도하는 대상과 내용이 없다 하여도, 합장을 하고 심신의 균형을 취함으로써 우리들의 능력이 넓어진다.

2. 추구하는 자세가 중요

검도에 있어서 추구하는 자세는 빠뜨릴 수 없다. 이것은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일 것이다. 적당한 기분으로 하면서, 높은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오래 가지도 못한다.

에도(江戶)시대, 劍만이 아니라 학문이나 예절로 유명했던 男谷精一郞의 直心影流의 도장에는 島田虎之助, 天野八郞 神原建吉 등의 이름난 검객이 있었다. 勝海舟는 男谷의 도장에서 수행하고, 이윽고 島田虎之助의 밑에서 劍의 수행에 힘쓰게 된다.

海舟가 5살 때의 일이었다. 야간연습을 하고 도장에서 돌아오면 식사준비, 청소 그리고 아침연습의 수행을 되풀이하는 매일이었다. 이런 일 외에도 어깨에 눈이 쌓이는 중에 참아내는 연습도 했었다고 한다. 또한 虎之助의 가림침으로 禪도 배우기 시작하여 弘福寺에서 좌선에 힘썼다. 나중에 海舟는 자신이 자객의 습격과 생사를 건 체험을 수없이 뛰어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때에 劍과 禪의 수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海舟는 21세에 直心影流의 免許皆傳을 받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젊은 날의 海舟와 같이 일편단심으로 劍의 수련에 힘쓰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타산이나 공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결과로서 따라오는 것이다. 추우니까 연습을 그만두자. 몸이 아프니까 움직이고 싶지 않다.하고 풀어두면 우리들은 이처럼 약한 자신에게 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억지라도 반복해서 자기자신을 극복해 가면 자연히 인간적으로 성장하여 간다. 인간의 기량이 한층 크게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언실행이 아니라 유언실행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내일부터 아침 5시에 일어나 수행을 할 거야!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만약 실행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이야기 듣는 것이 싫어서 무리가 되어도 행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압력을 반대로 자신의 성장에 이용하는 것이다. 또 자신과 약속을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하루에 1,000 번의 후리기를 하자. 하루에 영어 단어 10개를 외우자.와 같이 자신이 결정한다. 다른 사람과 약속하는 것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더 엄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만약 주위에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게으름을 피우기가 쉽다. 내일 하면 된다. 또는 오늘은 피곤하니까라고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해냈을 때에는 자신감이 생겨 자존심도 강해진다. 주위의 사람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매력이 늘어나게 된다.

사물을 추구하여 가는 것, 一意傳心으로 하나의 일에 철저히 하는 것, 그것을 위하여 有言實行으로 자신에게 억지로 몰아가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勝海舟의 예를 들면, 그는 蘭學을 배우기 위해 一蘭의 사서 全58권을 1년에 걸쳐 2組를 筆寫하였다. 당시에는 복사기가 없었으므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손으로 써서 복사했다. 이것도 상당한 인내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인내력도 海舟는 劍과 禪의 수행중에 기르고 있었다. 내가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검도를 권하는 이유도 이와 같이 인내력이 붙기 때문이기도 하다.

3. 검도를 통하여 무엇을 행하는가

검도를 수행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큰 일을 이룬 사람이 많다. 특히 역사의 전환기였던 명치유신 때에는 劍과 禪을 배워서 이를 자기 자신의 피와 살로 삼은 젊은이도 많다. 이 당시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던 사람들이 劍을 수행하여 큰일을 성사시켰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은 이 점이다. 검도를 하면 확실히 머리의 활동이 좋아진다. 이 점은 이 책에서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몸의 좌반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우측뇌가 개발된다. 그러나 아무리 우측뇌가 개발되어도 마지막 목표인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신문의 3면 기사나 식당의 메뉴를 기억하는 것은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직관력이 높아도 도박에만 힘을 기울이면 인간적인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은 창조력이 향상되었다고 하여도 아이디어를 단지 종이에만 적고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극단적인 예이지만, 두뇌개발을 하여 능력을 사용하는 방향이 틀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두뇌개발을 검도와 바꾸어 보아도 마찬가지다.

옛날의 劍術이 적을 베는 것이고, 현재의 검도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라면 확실히 어느 시기의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현대는 전국시대가 아니므로 적을 베는 것이 검도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러면 경기에 이기는 것만이 검도의 목적일까? 그것도 어느 단계에서는 필요할지 모르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어찌하여 옛날의 검호는 劍만이 아니라 禪을 행하였을까. 劍이라면 적이나 상대라고 하는 자신밖의 외부 상대에게 눈을 향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쓰러뜨려야 할 것은 자신의 나약함고 자기 자신이 아닐까.

처음에는 A에게 지지 말아야지. B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지.하고 자기 이외의 상대에게 눈을 자주 돌린다. 지망하는 학교나 편차 수치도 밖을 향한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禪과 같이 자신의 내면에 눈을 돌리면, 정말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타인과 비교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하여 100% 발휘할 것인가. 이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劍을 휘두르며 상대에게 눈을 돌리더라도 한 번은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려서 禪을 수행하는 劍士가 많다. 一流의 劍을 쓰는 사람은 모두 禪과 명상의 실천자라도 말할 수 있다. 과거의 30년분의 정보가 요즘에는 불과 1~2년에 주어진다고 한다. 초스피드의 시대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日進月步가 아니라 秒進月步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그러한 시대에 마음마저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혼자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하여 두뇌개발을 하는가?

어린이들에게는 머리의 활동이 좋아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확실히 하고 싶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 또는 승진시험을 보기 위하여라고 하여도 좋다. 그러나 결국 이런 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며, 작은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때문에 공부를 하고, 승단하기 위하여 劍의 수행을 하는 것도 시야가 좁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龍馬나 鐵舟는 劍의 명인들이었으나 사람을 베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山岡鐵舟도 개인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 인류라는 시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에 무엇을 주고 갈 것인가. 어떤 공헌활동을 할 수 있을까? 두뇌개발과 검도도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인간을 성장시키는 검도

성공학의 대가였던 어느 학자는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 인내를 들고 있다. 고인이 된 松下幸之助씨도 나의 성공은 성공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꾸준함과 인내심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과연 인내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문명은 편리성과 교환성으로 인하여 인내심을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계단을 오른다는 인내조차 귀찮아졌다. 작은 칼로 연필을 깎는 어린이도 지금은 드물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대뇌에 자극이 되어 바람직한데도 자동 기계에 넣으면 금방 연필이 깍아지므로 기다린다는 인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적어진 탓도 있고, 또한 풍요로운 시대 때문인지 어린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곧 사주고 만다. 여기서도 인내심은 자라지 못한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나는 굳이 검도를 권장하여 온 것이다.

물론 다른 무도나 스포츠라도 관계없다. 추위에 견디며 죽도로 후리기를 한다. 발이 아파도 참고 정좌한다. 공포심을 참고 경기를 한다. 이와 같이 검도를 수행하여가는 중에는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행할수록 습성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에 나와 어려운 경우에 처하여도, 작은 일에 힘이 빠지지 않는 인내력이 몸에 붙게 된다.

劍의 기술이 뛰어나거나, 뛰어나지 못한 것보다도 이것이 중요한다. 즉 몸을 움직여서 건강에 좋고 두뇌개발도 되는 것 이외에 강한 마음을 갖게 해줄 수 있다. 특히 뇌의 우측반구를 강화하게 되어 창조성과 감수성이 풍부하게 되고, 머리의 활동도 좋아진다는 점에서 검도를 특히 권하게 된다. 나는 능력개발을 업무로 해오면서 객관적으로 보아 검도를 권하고 싶다.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으므로, 특히 부모들에게 어린이 때부터 시키라고 권하고 싶다.

5. 發想力은 다양서에서부터

무사시는 <오륜서(五輪書)>에서 劍이라는 것은 도구와 같은 물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장면에 따라 큰 칼을 사용하기도 하고, 활을 사용하기도 하고, 작은 칼을 사용하는 것같이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들의 발상력에도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정된 사고방식으로는 劍은 사람을 베기 위한 물건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데, 이것은 발상력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엌칼 대신 야채를 자른다. 지팡이를 대신하여 사용한다. 사과 껍질을 벗긴다. 흙을 파엎는다.와 같이 얼마든지 용도가 있는 것이다.
무사시를 연구하여 보면, 그가 型에 구애받지 않고 고정관념을 타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가 좋은 것의 조건 중에 하나는 발상력이 풍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다양성을 안다는 것은 발상력을 강화하여 주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본 劍처럼 무엇인가 하나의 사물을 들어서 무엇에 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발상력을 강화시키는 훈련이 된다. 이 경우에 본래의 자른다는 목적에서 멀어질수록 아이디어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버팀목 대신으로 할 것인가,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양복의 등 쪽에 넣는 것 같은 것으로 할 것인가..... 물론 발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실행 가능한지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어떻게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가를 항상 훈련하여 가는 것이다. 직장이나 가정 안에서 즐겁게 게임을 해봐도 좋다. 놀면서 유연한 두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水平思考를 주장한 데보노 박사가 낸 데보노의 원통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흰 탁자 위에 검은 원통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30분 뒤에 이 원통이 쓰러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실은 이 데보노의 원통에는 정답이 없다. 말하자면 얼마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가가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발상력은 다양성에서 시작된다. 일상생활 중에서 다른 데에 사용할 곳은 없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른 물건으로 대용할 수 없을까?와 같이 생각하는 습관을 붙이자.

6. 연구하고 개량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사사키 고지로(佐佐木小次郞)는 歌舞伎인 이즈모의 阿國 춤을 보는 중에 부채를 흔드는 움직임에서 제비(燕)자르기의 돌려치기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고지로는 아마 항상 어떻게 하면 자신의 劍이 뛰어나게 될까?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채의 되돌림 동작에서 새로운 기술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당시에 수백명의 劍士들도 같은 춤을 보았으나, 아무도 새로운 기술의 발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항상 어떻게 하면 머리가 좋아질까?하고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새롭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잠재의식이 알려준다. 이것은 개량할 수 있다.라고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고지로가 劍의 수행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우측뇌가 개발되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또 신음류(神陰流)의 개조이며 劍聖이라고 불리는 上泉伊勢守도 마찬가지이다. 당시는 전장에서의 경험이나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힘만 믿고 적을 칼로 치려고 대들었던 난폭한 劍이 버젓이 통했다. 戰國의 세상이므로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上泉伊勢守는 더욱 효과를 내는 방법, 즉 규칙 같은 것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같은 길이의 칼이라면 찔러서 좋은가, 위에서 베어내리는 것이 좋은가, 그렇지 않으면 아래에서 위로 베어올리는 것인가, 혹은 적이 말 위에서 공격하여 오면 어떻게 대응을 할까?, 뒤에서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대응을 할까? 神陰流는 이와 같이 연구,개량을 하는 가운데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유파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와 개량이 없이는 실전에 통용되는 劍이 될 수 없다. 받는 칼이 없다는 시현류(示現流)도, 또는 劍術의 근대검도에 일보 가까워진 북신일도류(北辰一刀流)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창시자는 연구, 개량을 거듭하여 새로운 劍을 태어나게 해왔던 것이다.

나는 두뇌개발에도 항상 연구, 개량하여 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두뇌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은 언제인가? 무엇을 먹었을 때에 두뇌가 맑아지는가?라는 작은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향상하려는 마음의 자세이다. 로마의 현제(賢帝)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어간다.라고 말했다. 이는 두뇌개발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항상 연구, 개량에 마음을 두고 머리를 좋게 한다.라고 생각을 계속하여 가면, 이윽고 큰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자.

7. 전뇌인간(全腦人間)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자.

본서에서 검도는 몸의 좌반신을 주로 사용하므로 창조성, 직관력, 감성, 예술, 감정 등의 능력을 지배하는 우뇌개발과 연관된다고 반복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나 나는 우뇌만을 사용하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모처럼 우뇌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번득였다 할지라도 그것을 논리적인 뇌(腦)인 좌측뇌에서 종합해주지 않으면 주위의 사람들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그 우뇌적인 이미지는 발표되기 벌써 2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논문으로 종합하는 좌뇌적인 작업을 하는데 20년이 걸린 것이다. 우뇌강화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항상 좌뇌와 연락하여 좌우 양쪽의 뇌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가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나는 좌우 양뇌가 균형있게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을 전뇌인간이라고 부른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우 양뇌의 균형을 취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논문을 쓰는 좌뇌적인 작업에 피곤해지면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특히 등을 즐겨 연주하였다. 이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우뇌를 쓰는 것이다.

우리들은 오른손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피곤하면 자연히 왼손으로 바꿔 든다. 이것은 손뿐만이 아니라 뇌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들은 오랫동안의 습성으로 예술과 감성의 뇌인 우측뇌를 그다지 쓰지 않는다. 수학, 논리, 문자의 좌뇌적인 일이나 공부에 피곤해지며, 쉬거나 기분전환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좌뇌의 피로에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반대로 우뇌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자연에 접하면서 우뇌를 쓰면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우뇌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중에 좌뇌만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좌뇌뿐만이 아니라 우뇌도 의식하고 사용해서 전뇌인간으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검도야 말로 효과가 있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신은 과연 좌우 양뇌의 균형이 잡혀 있는가? 좌뇌만을 너무 사용한다면, 오늘부터라도 우뇌를 더욱 사용하여서 자극을 주자.(끝)


번역서명 :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검도> 右惱와 劍道의 關係---松本幸夫 著. 역자 서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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